노무현대통령 12주기 추모 독후감상문 공모전 대상작

대구경북운영자 2021.08.02 16:01 댓글 (0) 조회 (932)

아래와 같이 노무현대통령 12주기 추모 독후감상문 공모전 대상 작품으로 선정된 최명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성찰을 딛고 좌절을 넘어 미래로

- 성공과 좌절을 읽고

 

최 명 희

 

‘12주기 추모 독후감상문 공모전과 관련한 문자 메시지를 받고 어느새 12주기를 맞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소신 있는 발언으로 단숨에 청문회 스타가 된 순간부터, 누구도 쉽게 확신할 수 없었기에 더욱 감격적이었던 당선, 그를 위해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시민들로부터 받은 인정된 권력, 꿋꿋하게 공약을 이행해갔으나 상대 세력과 언론으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받았던 재임 기간, 임기 말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했던 퇴임 후 시민 노무현의 모습까지 그를 떠올리면 수많은 모습들이 아직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르는데 벌써 12년이 지났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진작에 사 두고도 바쁜 생활을 탓하며 미처 읽지 못했던 몇 권의 책 중에서 무슨 책을 먼저 읽어볼까 고민하다가 좌절이라는 단어에 꽂혀 성공과 좌절을 집어 들게 되었다. 모두들 자기변명과 자랑에 급급한 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하나인 그는 좌절을 말하고 있다. 봉하마을에도 여러 차례 가보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말하라면 서슴없이 그를 말하는 나로서는, 그의 성공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가 생각하는 좌절이 무엇인지 그의 입으로 들어보고 싶었다.

독서를 할 때 나는 책을 얼마나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책을 내 삶과 연결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과 연결된 책은 오래오래 기억과 마음에 남는다. 자연스럽게 감상문이나 발제문을 작성할 때면 책의 내용 정리는 간단하게 요약하고 나의 삶과 연결짓는 느낀 점을 길게 쓴다. 이 책은 세 가지 큰 키워드로 내 삶과 연결된다. ‘성찰, 교육, 미래이다. 그 관점에서 이 글을 풀어가고자 한다.

 

 

1. 좌절과 성찰

 

나의 실패를 진보의 좌절, 민주주의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고는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p.17) 대통령 노무현은 실패하지 않았다. 노무현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이어진 민주주의의 땅을 더 굳건히 다졌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일부 실패한 정책도 있지만, 그 또한 과제로 남겨진 것이다. 모든 것을 5년이라는 짧은 임기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실패한 부분을 더 깊이 생각하며 이를 진보나 민주주의의 좌절로 생각하지 않기를 신신당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아마도 이 부분을 읽으며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을 떠올릴 것이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윤동주 시인처럼 날마다 마음속 거울을 꺼내보며 부족했던 점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괴로워했을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연상되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성찰하며 시를 써내려 갔던, 결국 일본군에 의해 차가운 감옥에서 죽어 간 윤동주 시인. 친일파와 학살자들이 자신의 친일, 학살의 행적을 숨기고 자신의 치적만을 늘어놓을 때, 윤동주 시인처럼 성찰하고 좌절을 말하는, 그것이 미래의 한국 정치에 도움이 되리라 믿었던 대통령.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참회록의 이 마지막 두 연은 12년 전 우리들 마음속에 못이 되어 박혀버린 혼자 싸우게 해서 죄송한 마음과 연결되어 가슴을 울린다.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논밭을 일구는 선량한 시민으로 돌아가 못다 이룬 꿈들을 이루려던 그에게 몰아닥쳤던 광풍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망설이는 사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버린 그를 생각하면 나는 늘 이 시 속의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떠오른다.

물론 그 뒤로 수많은 노란 풍선의 물결이 함께 한다. 이 노란 물결은 이후 박근혜 정부 시절 촛불시위로 이어진다. 518 광주가 1987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하지만 왜 더 빠르지 못했을까. 조금 더 빨랐다면 우리는 아직 봉하마을에서 허허 웃으시며 손주들 자전거에 태우고 마을을 누비는 전직 대통령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오래오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명시적으로 공약하지 않은 공약을 말한 부분이 있다. 시민들과 정서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묵시적인 약속. ‘일관된 소신의 길, 손해 보는 길, 바보 노무현.’(p.22) 보다 편하게 사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부산 말고 지지층이 더 결집된 곳에서 선거를 나왔으면, 적당히 기업의 비위를 맞춰가며 정치를 했더라면, 언론과 손잡고 정책 홍보를 더 많이 했더라면 분명 편하고 쉽게 정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자리에 앉게 한 시민들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말로 한 약속이 아님에도 꿋꿋이 그 이상의 무게로 이를 지켜가려 노력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결같이 타인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이 컨셉인 한 유명MC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구설에 올라도 어느새 그 기억이 대중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기억도 타성에 젖는다. 여러 차례 경제범죄를 저질러도 기세등등한 유명 정치인을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경제를 살린 사람으로,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고 학살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을 뛰어난 정치인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방송부문 대상을 유재석이라는 개그맨 출신 MC가 수상하게 되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당연한 결과로 많은 이들의 축하와 지지를 받았다. 그는 한결같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한다. 자신이 웃기기 위해 남을 비하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보다 카메라 꺼진 후에 더 배려하는 모습으로 타인의 존경을 받는 그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저런 건 오래가지 못한다고. 조금 저속한 표현이지만 한 방에 훅 간다고. 막말과 범죄를 저질러도 쉽게 복귀하는 쎈캐들에 비해, 아주 사소한 말실수 하나만으로도 이미지가 추락해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털어서 먼지 안 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명시되지 않았으나 시민들은 계약 이상의 무게로 받아들였으니, 그 정신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 즉 국민은 관심이 없는데 오로지 신하가 자기 신념을 가지고 하는 불충인데, 거기에 좌절이 있다.’(p.46)고 했다. 국민을 왕으로, 자신을 신하로 보며, 국민의 뜻과 반하는 자신의 신념으로 정치를 하기에 이것이 불충이고, 거기에 좌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정책을 결정하는 힘을 권력이라 하며, 궁극적으로 여론은 국민의 생각에 달려있다(p.84)고 했다. 곧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끊임없이 성찰했고 좌절을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조금 억울하다. 누군가는 범죄를 저질러도, 학살을 저질러도 저렇게 잘만 살아있는데 말이다.

 

평화시장에서 온몸에 불을 붙이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생명을 손해 보았다.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다. 하지만 그가 우리 노동시장에 큰바람을 몰고 왔다. 근로기준법이라는 용어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들이 공부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바보 같기만 한 손해 보는 삶 또한 그렇다. 우리는 이제 그가 남긴 과제를 공부하고 성찰하고 개선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2. 정치와 교육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레 책의 내용을 교육과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대통령은 한나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가장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분야이자 가장 걱정스러운 분야(p.89)가 교육정책이라고 했다. 무차별적인 경쟁주의가 우리 교육을 망칠까 우려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국어로 된 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몰입교육은 사교육 시장만 배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말로 된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고, 사고를 발전시켜 토론에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온통 영어, 영어, 영어였다. 방과후학교는 또 어떤가. 노무현 정부 시절, 보충 수업이 아닌 방과후수업으로 개선되면서 특기적성 위주의 반이 꾸려졌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당시 한창 있기있던 POP글씨 쓰기를 강사님께 배웠다. 매번 교탁 앞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하던 선생님이 아이들 옆에서 같이 배우고 심지어 아이들보다 더 못하는 모습을 보이니 아이들은 더 즐거워했다. 육아휴직으로 잠시 쉬고 돌아오니 방과후학교는 다시 교과 위주로 바뀌어 있었다. 정권이 이렇게 교육을 좌지우지해도 되는가 화가 났다. 도학력고사를 앞두고는 수업이 도학력고사 문제 풀이로 바뀌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보다 30분 일찍 와서 보충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도 남아서 보충 수업을 하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것이 정말 학생을 위한 교육이 맞는 걸까? 수많은 고민을 했던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교육계 밖에서는 선생 편하려고 보충수업 안 하려고 한다고 쉽게 말한다. 공부에 흥미도 의욕도 없지만 대인관계도 훌륭하고 생활력이 뛰어나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공부의 굴레에 빠져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로 힘이 든다. 정규수업 시간에는 최대한 활동 위주의 수업으로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도 참여하며 능력을 키워주려 해 써보지만 문제 풀이 중심의 보충수업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영어 몰입 교육도, 교과 위주의 방과후수업도 지금은 학교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려 노력한 결과이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한 번 악습으로 되돌아가버리면 다시 돌아오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야 꽃피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그런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혹시 누가 적어주는 것을 보고 그럴 듯하다 싶어 읽기는 했지만 그러고는 곧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라고 언급하며 국민의 관심이 경제에 쏠려있는 지금 잊어버려도 챙기고 따질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걱정하였다. 읽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랐다. 생각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게으른 나를, 서울 광화문까지 이끌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위에서 언급한 딱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인물은 아니다. 둘은 똑같이 나쁘지만 결이 다르다. 그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지만 그 철학은 그릇된 방향으로 나있었고, 이를 밀어붙였으며, 그로 인해 많은 희생이 따랐다. 굳이 따지자면 박근혜보다 박정희 대통령과 더 닮아있는 인물이다.

 

책에 어느 방송사 지방 간부와 나눈 대화가 나와 있다. 정부가 언론에 압력을 넣는다며 불평을 하기에 물어보니 사후에 한 전화이고, 전화를 받았다고 기사를 고쳐주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한다고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니까 압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기사에 대해 항의하는 것도 이렇게 대접 받는 것을 보니 권력은 이미 언론으로 넘어갔구나.’(p.99)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교육의 3주체로 학교-학생-학부모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때로는 학교(교사)와 학생은 빠지고 교육청-학부모만으로 교육정책이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의사를 결정하는 주체 그것이 권력이라면, 교육 권력은 교육청과 학부모가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인해 등교 개학이 늦어지다가 온라인으로 개학이 시작되고, 점차 오프라인 개학을 맞았다. 그 외에도 여러 차례 변화하는 등교, 원격 일정 변화에 대한 교육 관련 소식을 의견 제시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공문보다 기사로 먼저 만났다. 교사들끼리는 네이버공문이라고 부른다. 더 이상 교육 주체의 일원이 아니라는 자조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국가는 정부-국회-법원이 독립적인 권한을 가지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의견을 내고 이를 토론하며 이끌어간다. 여기에 언론이 견제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어느 한 곳의 권력이 비정상적으로 커져서는 안 된다. 중심축이 무너져버린 건물과 같은 것이다. 뒤에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하고자 하니 여기서는 그만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해온 사회적인 이야기와 결이 다른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해 볼까 한다. 어린 시절 글짓기 반항 사건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학창 시절 생각이 났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반감으로 빚어진 일이었고, 끝까지 반성문을 쓰지 않는 어린 노무현을 두고 선생님이 이 조그만 놈이, 공부 좀 잘한다고 우월감이 굉장한 놈이야.”라고 말했다는 부분이 나를 아프게 찔렀다. 학창시절 담임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송곳처럼 다가왔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런 말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을 수도 있겠지만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언어로 난도질당한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그렇게 성장할 바에야 차라리 성장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나 또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반성하게 된다. 대통령의 일화에서 또 한 가지 속상한 지점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곧 개인이 가진 역사관일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개인이 가진 역사관에 따라 판단하고 소신을 가지고 행동하는데, ‘우월감이라는 폭력적인 단어도 마땅치않지만 공부 좀 잘 한다고와 결부시키는 것은 더욱 납득이 되지 않는다. 공부 좀 잘한다고 으시댄다는 말 참 우습다. 공부 잘하도록 경쟁시킨 것은 어른이다. 공부 잘한다고 자기 소신을 지키는 것이 아닌데 이 둘을 연결시켜 학생을 비난하는 것은 어른이 할 일이 아니다. 교사 개인의 성찰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할 문제가 있다. 정말 개인의 문제인가.

이와 연결되는 부분이 변호사 업계 자체의 문제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모두가 함께하는 집단의 습관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했습니다.’(p.136)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문제점을 공유할 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교사 집단도 마찬가지이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주변 어떤 집단을 둘러봐도 교사들만큼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집단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의 습관에 젖어 때로는 잘못된 행동을 일말의 죄책감 없이 하는 경우를 봐왔다. 초임 시절에는 잘못을 한 학생들에게 욕을 하거나 체벌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잘못한 아이를 체벌하지 않고 조용히 데리고 가서 상담을 하면 오히려 무능한 교사로 인식되기 일쑤였다. 선물도 마찬가지였다. 스승의 날 각 반 담임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받은 선물을 한아름 교무실로 가지고 내려와 이런저런 품평을 하며 누가 더 많이 받았고 덜 받았다며 비교를 하는 모습이 일상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그런 의식을 가지면 분명히 잘못된 일인데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집단 문화에 많이 녹아들지 못했던 초임 시절의 스승의 날, 선물을 많이 못 받자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 반 아이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고, 문득 그런 내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다음 해부터는 미리 일체의 선물을 받지 않는다고 꼬박꼬박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그제서야 아이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동료 선생님들의 곱지 못한 시선과 유난스럽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과연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이 힘들게만 보였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공론화되고 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지금은 선물을 바라는 교사가 아무도 없고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인정이 사라졌느니 그런 한탄도 듣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공론화되는 과정, 그리고 의견 수렴을 통한 법이나 규칙의 제정. 교육이나 정치나 마찬가지다.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은 중진들이 하는 일이고 저는 초선의원 아닙니까?”(p.143) 국회의원 299명 중 200명 이상이 사장편에 서 있는데 노동자 편도 몇 명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차게 포부를 밝혔던 초선의원 노무현. 이 패기 넘치는 장면을 보면서 그럴 분이시지.’하며 웃음 짓다가 문득 나의 초임시절 생각이 났다. 그때는 오로지 학생편이었다. 학생들 편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했다. 다른 반과 달리 군기(?)’가 빠질대로 빠진 우리 반 아이들은 중진급 선생님들의 눈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몇몇 훈계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대부분 선생님들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언젠가 한 번은 갈등 상황 때문에 힘들어, 한 선배 선생님께 이런저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선생님께서 조용히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초임 때는 그래야지. 이것저것 해 보고 애들 편도 들어주고.” 그 말씀이 어찌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설픈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면 오히려 반감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실수는 줄었고, 학생 이야기만 아니라 여러 구성원들의 말을 들을 줄 알게 되었다. 초임교사들의 마인드를 지지해주고 초심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도 더욱 강하게 하고 있다. 그들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성숙해가고 시야가 넓어지듯이 나 또한 그들을 보면서 잊고 지냈던 초심을 떠올리고, 관료 체제에 익숙해져가던 마음을 학생 쪽으로 활짝 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완전히 노동자의 편이 되어주고, 누군가는 완전히 소수자의 편이 되어주면서 서로 대화하면서 타협점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3. 언론과 미래

 

얼마 전 한강에서 실종된 대학생이 사망한 채 발견되어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이후 이어진 언론들의 자극적인 보도 행태였다. ‘알 권리를 핑계로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기사를 연일 쏟아내며, 심지어 타 기사의 내용을 복붙하고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일방적인 추측 기사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한 청년의 죽음이 그렇게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될 것인데 그런 인간의 존엄에 관한 존중과 배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일반인에 대한 기사로 이 정도인데, 연예인이나 정부 정책에 관한 기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직 우리 언론은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박원순 서울 시장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팩트를 전달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던지는 것이 언론의 할일일 것인데, 무분별한 각종 억측과 모욕적인 발언을 그대로 옮겨적고 이를 진보의 어두운 뒷모습인 양 전체로 부풀린다. 반성할 건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왜곡하고 부풀리고 개인이 속한 집단 전체의 잘못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이럴 때 카메라는 흉기가 된다. 사람의 생각도 흉기가 된다.’(p.76)고 말한다. 얼마 전 대대적인 보도가 된 한 연예인의 기사가 생각이 난다. 실내 흡연을 했다고 며칠 동안 각종 언론이 난리가 났었다. 스태프들도 함께 있는 공간에서 실내 흡연을 한 천하의 파렴치한이 되었는데, 알고보니 니코틴과 타르가 함유되지 않은 액상형이라 실내 흡연으로 단속되지 않는 종류의 전자담배였다고 한다.(물론 어떠한 형태의 흡연도 바람직하지 않고 고쳐야할 부분인 점은 맞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 별개로 온갖 비난과 추락을 기원하기라도 하는 듯 서로 앞다투어 똑같은 기사를 찍어내며 온 매체를 뒤덮으며 마치 모든 대중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기자들의 행태는 추악하게만 보였다. 심지어 그 사진은 맞은 편 건물에서 연예인들이 분장하는 곳을 망원렌즈로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취재 대상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것을 조금도 고려하지 못한 행위이다. 국민들의 알 권리는 팩트가 아닌 모함과 비난을 알 권리가 아니다. 취재 대상을 인간이 아닌 무생물처럼 짓밟으면서까지 알아야 하는 권리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언론에 의한 살인이다. 악플과 그 악플을 재생산해댄 언론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선택했던 여러 연예인들처럼 말이다.

 

어느 시대나 소위 절대 빈곤층, 상대적 빈곤층이 없었던 때는 없습니다. 참여정부에서는 최저생계비를 높여서 기초생활보장도 늘어나고, 절대빈곤층 통계도 늘어났습니다. 이를 두고 빈곤층이 더 늘어났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빈곤층이 더 늘어난 게 아니라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 층이 더 늘어난 것입니다.’(p.173) 참여정부를 비난하기 위해 떠들던 경제 파탄론의 진실은 이것이다. 기자들은 통계를 수치로만 받아들이고 이를 기사화하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면서 정부를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통계의 오류라고 한다. 이런 통계의 오류를 모르고 기사를 썼다면 팩트를 확인하거나 이면에 숨은 배경을 찾지 못하는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썼다면 그야말로 악의를 가진 분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쪽이든 언론으로서는 실격이다. 인터넷 신문과 각종 뉴스채널을 가장한 유튜브 채널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현재 언론 중 이 두 부류에서 자유로운 언론이 얼마나 될까. ‘작전 통제권 환수나 용산기지 이전은 제가 한다고 하니까 반대하는 것입니다. (중략) 작통권 환수, 주한미군 재배치, 용산기지 이전 등은 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시작한 것 아닙니까?’ 대통령이 이렇게 자세하게 팩트를 말하고 있는데도 이를 반영하여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언론은 그를 친북정권, 경제 파탄의 책임자로 몰고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다시 요즘 언론으로 돌아가자. 요즘 젊은 세대는 종이신문을 거의 보지 않는다. 손 안에 온갖 매체가 다 있기 때문이다. 벌떼처럼 난립하는 언론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언론은 각종 자극적인 말로 독자를 유인한다. 유사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유튜브는 더욱 심하다. ‘찌라시라는 것이 있다. 검증되지 않은 무책임한 글들이다. 이런 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언론을 비교하며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고, 쉽게 흥분하는 이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질문 그대로 묻고 싶다. ‘진정한 의미에서 현재 언론이 서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정치권력입니까? 시장권력입니까? 시민권력입니까?’(p.239) 정치와 시장 권력에 기대어 있지 않은 진짜 언론을 구별해야 한다. 개인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책임 있는 언론이 필요하다. 언론이 개혁되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

 

큰 형님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젊은 사람들은 상당히 고통스러워하거나 방황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이 만나면 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p.114~115)라고 한 부분이 있다. 대통령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니 몇십 년 전 이야기인 건데 안타깝게도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지옥 같은 나라라는 뜻으로 헬조선이라는 비하하는 말이 생겨났고, 지금도 인터넷 상에는 현 정부를 비난하는 글이 가득하다.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데 떵떵거리고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럴 때 가장 분노를 해소하기 좋은 대상은 공공의 적인 법이다. 학생들이 교사를 욕하거나 교사들이 교장을 욕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취업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데 취업이 쉽지 않고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마주할 때 취업준비생들이 느끼는 분노의 감정은 고스란히 정부를 향해 표출된다. 몇십 년 전에 비하면 지금 이 순간은 미래였다. 그런데 그 미래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경쟁의 굴레에 갇혀버리는 느낌이다. 새롭게 맞이할 미래도 이렇게 되면 안 되지 않는가.

 

대통령 이야기-무엇을 하고자 했는가에서는 대통령의 과제에 이 시대의 역사적 과제를 언급하고 있다. 지체된 역사의 과제를 먼저 이야기하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가야하는지 그 방향과 방법을 모두 살펴야 함을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역 갈등이라는 말을 못이 막히도록 듣고 살아왔다. 영호남의 대립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호남을 고립시켰다’(p.146)가 정확한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지금도 극우 사이트를 추종하거나 호기심에 드나드는 청소년들이 공공연하게 호남지역을 외국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정치 생활 내내 김영삼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구도와 싸워야 했던 노무현 대통령. 끝내 이 지역갈등을 완전히 극복해내지 못했다. 아직도 선거 결과표는 동서를 각각 다른 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권력만 민주화되면서 힘이 빠져버리니까 기득권 가진 사람들, 특히 부당하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p.125) 대통령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먼저 우리는 과거사 정리를 해야 한다. 지체된 역사의 과제를 빨리, 그리고 늦은 만큼 정확히 해치워야 한다. 그래야 그 바탕 아래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다.

 

 

대통령은 이 글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인권, 노동, 환경, 지속가능한 사회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만들어가는 것은 시민사회 운동이라고 말한다. 시민을 위한 정치, 그것은 곧 시민이 행동하는 시민사회 운동을 통해서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금 더 열정적으로 사회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노공이산(盧公移山)’. 바보처럼 우직하게 소신을 지켜 산을 옮기는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바보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자신의 소신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진짜 바보가 되어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들었던 깊은 잠에서 살짝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행동하며 살아야겠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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