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단소식

내 삶에 들어온 노무현

by노무현재단 · 2026.7.10. 13:29

공유하기

노무현 대통령 탄생 8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16일부터 5월 31일까지 시민기억수집 〈내 삶에 들어온 노무현>을 진행했습니다. 후원회원과 시민 여러분께서 277개의 소중한 기억을 보내주셨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총 278개의 기억입니다. 울산에 거주하시는 연로하신 회원 한 분께서 "대통령님 사진으로 만든 동영상이 있는데 참여할 수 있나”하시며 이메일로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개인의 삶 속에 머물던 기억이 우리 앞에 도착했습니다. 시민의 기억 속에 노무현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총 278건 기억, 봉인 해제

보내주신 기억 대부분은 글이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한 줄로 남겨주신 분이 127명, 조금 더 긴 글로 전해주신 분은 92명입니다. 이어 사진 41건(동영상 포함), 오랫동안 간직해 온 물건 사진 18건 순입니다. 

 

참여자의 85%는 대통령의 재임과 퇴임, 서거를 직접 기억하는 40~60대였습니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뿐 아니라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부산과 경남에서도 많은 분이 참여해주셨습니다.

 

 

“희망을 가슴에 품게 해준 바보 아저씨”

“그분의 삶은 내 인생의 지표가 되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준 노무현”

“내 삶에 들어온 노무현은 정겨운 막걸리 한잔이었다.”

 

 

시민들이 보내온 기억에는 각자의 삶에 들어온 노무현이 담겨 있었습니다. 후보 시절 경찰의날에 한 지구대를 방문했던 대통령을 그때 한 번 안아드리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는 경찰관의 기억, 대통령의 편지를 받고 싶어 이메일을 보냈는데 실제 답장을 받고 감격했다는 어린시절 기억, 장애인과 보호자 100여 명이 청와대 견학하던 날 장애인들이 견학 중이라는 말을 듣고 대통령이 더 먼 길로 우회해 가셨다는 배려의 기억,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밀짚모자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도 “사진 좀 찍어주세요.”하면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던 이웃 할아버지 같은 모습까지 대통령의 온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기억들도 많았습니다.

 

 

행동하는 시민으로 내 삶을 변모시켜 준 노무현

이번 기억수집에서 가장 많이 발견한 것은 내 삶에 들어온 노무현이 남긴 ‘변화’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대통령은 처음으로 믿어본 정치인이었고, 삶의 방향을 알려준 어른이었습니다. 대통령을 알게 된 뒤 처음 투표를 시작했다는 시민,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시민, 자녀에게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후원회원이 되고, 재단 행사와 자원봉사에 함께 해주신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 시민은 고등학생 시절 대통령의 서거를 지켜본 뒤 ‘사람 사는 세상’의 의미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고민이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이어졌다고 전해왔습니다. 지금은 심장혈관흉부외과 수술실에서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며 대통령의 철학이 자신의 직업과 삶에 어떻게 이어졌는지 담담하게 들려주셨습니다.

 

 

 

어린 날의 기억이 이끈 길,

흉부외과 수술실에서 실현하는 ‘사람사는세상’

 

2009년 5월, 대입 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었던 제게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세상이 슬픔으로 일렁이던 모습을 보며, 저는 그분이 평생을 바쳐 외치던 ‘사람사는세상’이 도대체 어떤 세상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신분과 직위, 가진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세상. 그 묵직한 가치관은 제 청춘의 이정표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람의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저는 올해로 10년 차가 된 심장혈관흉부외과 수술실 전담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치열한 수술실은, 역설적이게도 제가 찾던 ‘사람사는세상’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는 사회적 지위가 무엇이든, 재산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오직 ‘살아야 하는 하나의 소중한 생명’일 뿐입니다. 어떠한 특권도, 반칙도 통하지 않으며, 오직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료진의 정직한 땀방울과 헌신만이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비록 제게는 그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간직해 온 유물 한 조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가슴에 새겼던 그분의 철학은, 매일 아침 수술실 스크럽을 마주하고 환자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들어서는 제 손끝에 가장 생생한 기록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을 바라보던 그분의 미소를 닮아, 앞으로도 환자의 생명 앞에 가장 겸손하고 정직한 간호사로 살아가겠습니다. 그분의 탄생 80주년을 맞아, 제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깊은 진심을 담아 올립니다.

 

 

  

사진과 기록이 전해준 감동

보내주신 사진에도 저마다의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2008년 8월 14일, 한 가족은 큰맘 먹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차에서 잠을 자며 이어간 여행이었지만, “보고 싶던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자”는 말에는 가족 모두가 한뜻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날 봉하마을에서 찍은 사진 속 아이들은 어느덧 훌쩍 자라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내주신 분은 “항상 그 깊은 성정을 배우고 있다”며, 그때의 기억을 다시 꺼내주셨습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아기가 노란 티셔츠를 이불처럼 덮고 잠들어 있는 사진도 도착했습니다. 사진을 찍은 시민은 2014년 11월, 이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친노’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대통령님 곁에 함께 앉아 찍은 사진도 눈에 띕니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을 때 자세를 취하기 어려워하자, 동행한 김경수 전 비서관이 사진사 역할을 맡아 가까스로 함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지금도 어린이집 현관에 부착되어 아이들에게 대통령님의 기운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사를 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못 받을 뻔했던 취임식 초청장을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바뀐 집 주소를 알아내 전해 주던 우체부 아저씨가 떠오른다던 기억도 있습니다.

 

 

 

 

노사모 초창기 홍보 스티커와 49제 때 오산에서 사용했던 촛불을 소중히 보관해 온 시민도 있었습니다. 2002년 경기 남부 노사모 회원들이 지지했던 기억은 작은 물건 속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2005년 봄, 반 아이들과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받은 기념엽서를 소중히 간직하고 계신 초등 교사의 기억도 전해졌습니다. 선생님께선 엽서에 담긴 1년 12달의 평안한 일상에 노무현 대통령이 일조하셨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87년 6월항쟁 직후 존경하는 민주화운동 동지와 함께했던 기억’, 대전 한남대 앞 PC방에서 진행된 ‘노사모 창립총회’의 기억처럼 개인의 삶 속 한 장면이 우리 민주주의의 중요한 순간과 맞닿아 있는 사연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시민의 삶 속에 남은 노무현

시간이 지나도 한 공간에 남아 여전히 아이들과 만나는 한 장의 사진부터 소중히 간직해온 친필 사인, 청와대 기념품, 취임식 초청장, 국민 참여 운동 회원가입 증서, 후보 경선 당선 후 후보자 감사 편지까지. 시민 각자의 삶에 남은 노무현의 흔적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그 다양한 기억의 조각을 통해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 시대를 풍미한 과거의 인물이 아닌, 현재 시민의 일상 속에서, 선택 속에서, 삶의 방향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 주신 277명의 시민 여러분께 지면을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QR카드
페이지 맨 위로